Ⅰ. 양명학의 의미
중국 명나라 중기에 태어난 양명(陽明) 왕수인(王守仁)이 이룩한 신유가철학(新儒家哲學). 송대에 확립된 정주이학(程朱理學)과는 대립된 성격을 가지고 있어 육상산(陸象山)의 철학과 함께 심학(心學)으로도 불린다. 왕양명은 초기에 이학(理學)을 공부하다가 주자(朱子)의 성즉리(
Ⅰ. 양명학의 개념
중국 명나라의 양명 왕수인(王守仁)이 세운 유가철학의 한 파. 주자학(朱子學)이 번거롭고 우회적인 것에 회의를 가지고 직접 간명한 깨달음을 얻자는 것이 이 학풍이다. 주자학에서는 성즉리(性卽理)라고 하는 데 대하여 양명학은 심즉리(心卽理)라 한다. 심즉리로부터 출발하여
들어가며
양명학은 왕양명(1472~1528년)에 의해 성립되어 주자학과 더불어 중국 유학(儒學)의 기본으로 자리 잡았고, 동아시아의 유학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조선에서는 양명학이 성공적으로 발전하지 못하였다. 양명학의 성립은 주자학에 대한 비판에서
1. 왕양명(王陽明)의 출생(出生)
왕양명은 본명은 수인(守仁)으로 절강성(浙江省) 여도(余姚)에서 1472년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가 진사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하여 10세에 북경으로 이사하여 살게 된다. 그가 18세가 되던 해, 강서(江西)의 주자학자인 누인재(婁一齋)를 방문하여 반드시 학문을 통해서만
양명학 주자학의 비교
일본의 경우 메이지유신의 정신적 토대가 되고 지대한 학문적 영향을 끼친 사조가 양명학이었던 것과 달리 유독 조선에서는 양명학이 기를 펴지 못했다. 그만큼 조선의 주자학적인 학문 풍토가 폐쇄적이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러한 양명학의 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