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 민비의 척족들이 장악하게 되었다. 민씨 척족정권은 흥선대원군이 취했던 강력한 척사양이정책(斥邪攘夷政策)과는 달리 개방정책을 펴서, 76년에는 일본과 수호조약을 맺고 구미 열강과도 차례로 조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러한 개화시책을 틈타 일본이 정치적경제적으로 침투해 오자, 신사척사상
상의하여 화공 및 포격을 가하여 셔먼호를 불태워 격침시켰으며 토머스를 비롯한 전승무원 23명이 소사하거나 익사하였다. 당시 조선의 흥선대원군 정권은 이 사건과 동년의 프랑스 함대의 침입을 계기로 양이정책을 더 한층 강화하였으나 이 사건의 진상이 뒷날 밝혀져 신미양요의 원인이 되었다.
권의 장서를 보관하였던 임천각(臨川閣), 불교사찰인 법운사(法雲寺)와 내제석원(內帝釋院)터도 발굴되었다. 또한 수많은 기와와 함께 지붕의 마루기와에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잡상(雜像)이 출토되어 당시 궁궐의 지붕 장식 형태를 알 수 있다. 또한 궁전건물의 설계에서 일정한 비례관계가
Ⅰ. 서 론
최근 한류열풍으로 인하여 외국관광객이 한국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한국을 방문하여 한민족의 전통양식과 문화에 대하여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 한국의 전통양식에 해당한 건축물, 도성, 경복궁, 왕릉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관광가이드가
권과 생활권을 유지하고 있던 조선사회에도 서양세력이 침입하였다. 이들은 주로 한반도 해안에 대한 탐사와 측량에 나섰으며, 때로는 통상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조선은 이러한 서양의 도전에 대해 천주교에 대한 경계나 박해를 강화하였다. 특히 이양선의 잦은 출몰과 북경의 함락소식은 조선사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