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지라고 규정할 수 있는 기준은 어디에 두어야 하며, ‘조선’ 과 ‘동아’ 두 신문의 쇠퇴와 소멸과정에 집중하여, 핵심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방응모, 김성수의 행적을 살펴보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또한 이러한 양상이 나타나게 된 30년대와 40년대의 언론사 관련 시대의 흐름을 살펴보고, 이
혹은 총독부 권력과 언론의 갈등관계의 과정으로 파악하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상황들을 고려했을 때, 1910년부터 1919년을 ‘민족지가 없던 시대’, 1919년에서 1940년까지를 ‘민족지의 출현과 굴절’로, 1940년 이후는 ‘민족지소멸시대’로 규정하는 것이 가장 현명할 것이라 생각된다.
민족지 출현-굴절의 시대(1919∼1940)의 언론통제
가) 3·1운동과 그의 영향
일제는 전 민중적인 3.1운동에 의하여 큰 타격을 받고 그에 대한 반응으로써 대책에 부심하였다. 3.1운동의 타격을 받고 일제의 식민지 정책은 세 가지 방향의 변동을 보였다. 첫째는 이른바 '문화정치'로의 전환을 표방하면서
○한성순보와 한성주보의 역할
1. 당시의 신지식인이 발간
2. 유사신문(중국의 저보, 경보, 일본의 요미우리)의 영향을 받아서 출간
3. 1881년 일본사람이 부산에 와서 한성 순보에 앞서 조선신보 발간, 일본의 앞선 인쇄기술이 한국언론사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4. 한성순보와 주보의 언론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