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진이 있었고 서쪽에는 서하가 세력을 형성하여서 당시 동아시아 정세의 변수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처럼 고려 건국 초기부터 동북아시아는 팽팽한 세력균형을 이루며 서로의 안보 이해에 따라 치열한 외교전을 벌이게 되었다.
이 시기 송은 중국을 평정했으나 장성 안에 위치한 연운 16주를 거란
김영란법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
파리기후협약 :온실가스 감축 목표 위해 파리에서 체결된 21차 기후변화 협약 당사 국총회의
국정조사 :국회가 특정사안에대해 조사를 시행할 수 있는 제도
고노담화:일본군 위안부 모집에 대해 일본군이 강제 연행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내용
마지막으로 인조시대 외교정책 특징의 세 번째로는 외교정책에 대한 국왕 인조의 안일한 태도이다. 인조시대의 고위 정치가들은 명나라를 따르면서도 후금과의 전쟁은 자제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급 관료들은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주장하면서 후금과의 일전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여진족, 신라 사람들 등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사민정책(다른 지역 사람들을 평양으로 이주시켰던 정책)에 의해 섞여 살아가고 있었다. 개경은 중앙정부의 지배를 받았으나 서경과 동경과 남경은 각 지역에 설치된 유수관(留守官)의 지배를 받았다. 그런데 서경에는 동경, 남경과 달리 유수관 외에 독
1.1. 외교정책 이론의 적용과 한국외교정책의 특징
2장 외교정책이론에서 제시한 로즈노, 이스턴의 환경 모델에 따라 한국의 외교정책이론을 분석한다면 다음과 같은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 먼저 개인차원의 변수를 들자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즉흥적인 변수" 때문에 남-북 관계 그리고 한-일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