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파동의 재현은 `밀월 속에 싹튼 일본 측의 배반`으로 인식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돌이켜 보건데 한일관계에 있어서 과거사 마찰은 90년대 이래 그 심도와 빈도에 있어서 더욱 격화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냉전의 종언과 공산권의 몰락에 의해 종래 한일관계의 구심력으로 작
일본인이 거주하면서 무역과 정보수집에 종사하였다.
통신사를 쇼군직 취임시 파견하는 사절로 기술함으로써 일본 우위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손승철(「일본역사교과서 고려,조선시대 기술의 왜곡실태 분석」)에 따르면, 일본학계가 통신사를 조공사절로 보는 주된 이유는 일본의 막부 쇼군이
사례는 양국의 교류를 통해 공동 교과서를 집필한 대표적인 예이다.이 사례가 주는 시사점을 바탕으로 ‘조용한 외교정책’으로 일관하던 모습에서 벗어나 좀 더 현실적이고 실행 가능한 대응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Ⅱ. 배경과 목적
1. 역사교과서왜곡 파동
일본의 역사교과서왜곡은 1982
일본군의 난징대학살 사건에 대하여 일본군의 약탈, 폭행은 세계적인 악명을 남겼다고 한 고교 일본사에 기록하며 전후에 대해 반성을 하였지만. 10년도 채 가지 못하여 1950년대 초부터 우익들의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되었다.
■ 1950년대 : 우익의 1차 교과서 파동
1953년 - 일본의 재군비와 자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