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역사학파(경제학파)의 이론
역사학파는 리스트에 의해 시작되어 구역사학파와 신역사학파로 분리되어 이어졌다. 선구자인 리스트는 “경제학의 국제적 체계”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제시하는 체계와 고전학파와의 특질적인 차이점은 국민국가를 들 수 있다. 개인과 인류와의 중간항으로서
1. 근대역사학의 성립
근대역사학이란 전통사학으로 대표되던 기존의 중세사학으로부터 벗어나 독립적인 학문으로 정착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것은 전통사학의 성격이나 범주를 벗어나 역사학의 독립적 위상을 확립하였을 때 가능할 것이므로, 한국 사회의 근대화와도 궤를 같이 한다.
한국
1. 고대의 역사학
이미 희랍-로마 시대로부터 헤로도토스는 그의 역사적 저술로 인하여 지대한 관심의 대상으로 비평과 찬사를 받아왔다. 오늘날 "역사서술의 창시자"로 알려진 그가 그의 뒤를 이은 고대의 사가들에 의해 혹독한 비판을 받은 것은 아이러니하다.
투키디데스는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역사학파들의, 특히 랑케의 역사적 세계관은 위에서 살펴보았던 초기 심미적 역사주의에 힘입은 바도 크지만 슐라이어마허를 중심으로 한 낭만주의의 개체이론과 그에 상응하는 해석학에서 힘입은 바 크다. 이것은 결국 문헌을 통해서야 비로소 현재에 알려질 수 있는 역사적 삶의 일회성이 아직은 방
사이비역사학의 등장 배경은 197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2년 5.11일 박정희 정부는 교육의 국적을 찾자는 제창에 따라 국사교육강화위원회를 두고 민족 중심의 역사교육을 실시한다. 이 때 등장한 사람이 안호상으로 대한민국 초대 문교부 장관을 지낸 사람이다. 그는 단군과 고조선에 깊은 관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