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개소문(淵蓋蘇文, 603년? ~ 665년?)
1. 연개소문의 출생
- 홍무(弘武, 고구려 26대 영양왕의 연호) 14년 5월 10일에 출생 : <환단고기>에 기록,
신빙성은 없음. 즉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음.
- 강화도 고려산 서남쪽 봉우리인 사루봉 기슭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짐 : <강도지>에 기록
- 5부 중 동부
연개소문 (淵蓋蘇文)
▲ 인물소개
15세에 아버지의 직책을 이어받아 대대로가 되었으며, 642년 당나라의 침입에 대비하고자 북쪽 1000리에 이르는 장성을 쌓았다. 그 해에 자신을 제거하려는 세력을 몰아내고 영류왕을 죽였으며, 보장왕을 세운 뒤 스스로 대막리지가 되어 정권을 차지하였다. 그 뒤
Ⅱ . 淵蓋蘇文의 집권과 귀족 연립체제의 붕괴
642년 정변을 통해 영류왕과 반대세력들을 제거하고 정권을 잡은 연개소문의 등장은 대내외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특히 귀족 연립체제로 유지 되고 있던 고구려 정국운영에 큰 변화를 초래하였을 것으로 믿어진다.
먼저 연개소문 집권의 배경으
金春秋와 淵蓋蘇文
■ 金春秋(604~661)
1. 출생
- 진지왕의 아들 龍春과 진평왕의 딸 天明 사이에서 태어남
- 진지왕의 폐위로 성골에서 진골로 族降됨
※ 족강의 배경
성골과 진골이 구별된 이유는 확실치 않으며 여러 가지 추측이 있다. 왕실 혈족집단의 분지화 과정에서 성립되었다는
연개소문에 대한 글을 발견하고 본 과제를 시작하게 되었다.
중국 역사상 최강의 군사력을 갖고 있었다는 당나라가 망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고구려와의 전쟁이 참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참패의 중심점에는 연개소문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2) 역사상의 자취
■ 연개소문(淵蓋蘇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