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장으로부터 연희전문학교의 상과에서 강의를 맡아달라는 초청으로 귀국하게 된다. 귀국하기 전 서재필 박사를 찾아갔다가 “한국인임을 잊지 마시오.”라는 말과 기념의 정표로서 목각화 (버드나무) 한 장을 받았다. 이 무성한 한 그루의 버드나무는 오늘날까지 유한양행의 마크로 사용되고 있다.
연희나 궁정 연희에서 추어지는 춤도 크게 발전하였으며 전문적인 연희자의 사회 계급도 생겨났다. 그리고 전해지는 움직임의 기록에서도 대단한 기교와 신체단련을 필요로 하는 고도의 움직임을 구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발전된 문화 속에서 무용이 이집트 사회에서 가장 중
연희의 전통과 탈춤의 성장」 『민족문학사 강좌』상, 창작과 비평사, 1995 재인용
당대의 배우들은 산대도감(山臺都監)이나 나례도감(儺禮都監) 등 궁중연희를 관장하는 관청에 소속되어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 농사를 짓지 않고 민간을 떠돌면서 연행하였고 조선조 후기 산대도감이 폐지되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