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도사건과 주변열강의 역학관계 및 조선의 국가전략을 중심으로 한반도의 현재를 가늠해보려 한다. 거문도 사건은 1895년 4월 15일부터 1897년 2월 27일까지 영국이 거문도를 점령하고 장기간의 다국적 철수외교를 통해 해소된 국제정치적 사건이었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을 겪으면서 자주적 근대국
서구열강의 근대적 무기 앞에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각국은 무력하였고, 일본 역시 미국에 의해 문호를 개방하였다. 이때까지 독자적인 문화권과 생활권을 유지하고 있던 조선사회에도 서양세력이 침입하였다. 이들은 주로 한반도 해안에 대한 탐사와 측량에 나섰으며, 때로는 통상을 요구하기도 하
총탄을 방사
조선은 화선 공격으로 해적선을 불태워버림
* 결과
- 미국은 이 사건을 계기로 조선 침략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기 시작
- 벨(H.H.Bell) 아시아 함대 사령관: 진상조사, 생존자 구출과 더불어 거문도점령 구상
- 미국 해군성의 분위기: 조선을 응징해야 한다 → 1871년 신미양요
영국
1890년대 일본인들은 유신 후 자신들이 달려온 근대화의 길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맞게 되었다. 이 때 일본은 개국 이래 처음으로 국가의 생사가 걸려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청일전쟁의 승리로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이제 서양과 대등한 위치에 올라섰다고 믿었지만 전쟁
한국을 식민지로 만든 후 다른 국가들과 공유하려
하지 않는 일본의 태도
1905년 이후 일본의 한국 통치를 받아들인 영국
정부는 일본의 잔학 행위에 대한 주장을 공식적으로
는 심각하게 반박하지 않았으나 1919년 3.1 운동
때 영국 정부는 일본의 행위에 대해 훨씬 더 비판적.
영국 정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