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여에 의한 인식을 뜻한다. 이것은 부부사이의 관계처럼 친밀한 결합이다. 이것은 과학적 지식과 대조를 이룬 실존적 인식이며 하나 됨의 경험이며, 구원의 경험이다. 물론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의 지식인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인간의 인식적 기능을 신적인 것에의 참여로서 이해하고 있었다.
영지주의는 결국 그리스도교 교훈을 부인하지 않고, 다만 그 교훈에 더 합리적인 설명을 주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 시대의 교회와 공통되는 것은 드물었다. 그들의 목적은 도덕적 생활 보다는 오히려 지적인 계몽에 있었다. 그들의 욕망은 죄의 부패에서 보다는 오히려 물질계의 구속에서
영지주의는 정통주의의 형성에 간접적인 촉진제가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단들의 도전을 통하여 기독교 신앙은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게 되었고, 이단 사상이 등장하면서 정통 기독교 교리가 체계화되기 시작하였다. 이 점에서 이단 사상은 기독교 사상사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었음을 말해 준다.
영지주의의 원형은 기독교 이전부터 있어 왔지만 영지주의의 형태를 갖춘 하나의 사상 체계는 기독교 이후에 형성된 신학의 조류하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레니우스, 터툴리안, 히폴리투스 같은 교부들은 영지주의가 플라톤주의나 아리스토텔레스주의 등의 헬라철학과 상당히 관련이 깊다고
Ⅰ. 영지주의(그노시스주의, 그노시즘)의 기원
영지주의 기원에 대해서는 현대에 주로 4가지를 설명한다. 1)헬라 철학 2)동양 종교 3)기독교 4)또는 이단적인 유대교로부터 발생하였다고 한다. 이 4가지 요소가 영지주의에서 발견되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하나 상호 관련성 때문에 그 정확한 기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