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업의 그림을 구한 사람들은 위로는 왕과 고위 대신들로부터 아래로는 중인, 장사치, 부호 등 아주 많았다. 그러나 장승업의 그림을 구하려면 권위나 금전보다도 좋은 술과 인격적인 대우가 필요했다. 장승업은 아름다운 여인이 따라주는 좋은 술을 실컷 마시고는 취흥이 도도한 가운데 기운 생동하
반적으로 현재, 그리고 소소한 자신의 일상 속, 자신을 온전히 남과 비교하지 않고 사랑할 때 행복이 온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 자신에게 실망 아닌 실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러한 행복들을 그동안 익숙함에 무뎌져 당연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나에게 ‘행복이
동생에게 아픈 죄책감을 느끼며 자살하고 말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반고흐가 이와 같은 모든 열망과 고뇌를 전환시켜 그의 예술 속에 형상화했다는 것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진정한 개성적인 예술, 즉 깊은 생명감이 배어있는 정신적 구원수단으로서의 예술, 또는 자신을 전이시키는 최초의 예술적
빈센트반고흐는 그리 쉽게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쉽게 포기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설교를 위해 다른 방법을 선택했는데, 바로 그림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림은 빈센트의 새로운 소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말이 간단하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
반고흐 하면 술주정뱅이에 자기 귀를 자르고 권총으로 자살한 미치광이나, 아니면 예술적 정열의 화신이나 천재화가로만 여겨져 왔다. 그러나 단순히 그가 위에 언급한 것처럼 양극단의 평가를 받은 인물이라면, 그는 우리조의 발표의 대상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본론에서 언급하겠지만 불행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