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고향이 공주인 나는 어렸을 때부터,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에 자주 가보았다. 또, 장손인 내가 우리집안의 족보를 보았을 나와 같은 돌림자를 사용하셨던 오세창이라는 분을 볼 수 있었는데 그분은 3.1운동시 독립선언문에 서명하신 33인중 한분이셨다. 그때부터인지 나는 유난히 일제강점기
오세창도 적극 참여한다는 뜻을 확인했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으로는 자주독립해야 한다는 사실은 자명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모으기란 그렇게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월남 이상재 선생을 찾아가 독립운동에 대해 소상히 설명하자 그는 잘못하면 폭동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다칠 것이니
1. 한용운의 생애
1879년 8월 29일 :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491번지에서 한응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다
1905년 1월 26일 : 백담사에서 김연곡사에게서 득도
1910년 9월 20일 : "조선 불교 유신론"을 백담사에서 탈고
1919년 1월 :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제창과 관련하여 초린, 오세창 등과 조선독립을 숙의.
3.1
오세창의 『대동시선』, 차천로『오산설립』,『청구시초』등에 옮겨서 전하여진다.
1.2. <공무도하가>의 배경설화
최표가 엮은 『고금주』에 실려 있는<공무도하가>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현대어역>
“공후인이란 조선 땅의 뱃사공 곽리자고의 처 여옥이 지은 것이다. 자고가 새벽에 일어나 나루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