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붙던, 화들짝 불에 덴 진한 입맞춤과도 같던 방구들 장판의 그 맛과 멋을 잊을 수 없는 우리들이 존재하는 한다.
요즘처럼 찬바람이 속살을 파고들 즈음이면 군불로 데워진 뜨끈한 온돌방이 제격이다. 겨울비라도 내려 몸과 마음이 눅눅해지면 온돌의 아랫목은 더 없는 극락이다.
Ⅰ. 개요
최근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머무른 절로 유명한 경기 양주 회암사지(사적 제128호)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온돌시설이 원형에 가깝게 발굴됐다.
공동조사단 장경호 단장은 ꡒ온돌시설이 확인된 건물지는 고려 말에 목은 이색이 작성한 ꡐ천보산회암사수조기ꡑ의 건물배치로
Ⅰ. 서론
1527년 중종 22년에 최세진이 지은 훈몽자회에서 “항(沆)”을 “구들 강”이라고 하였고, 장갱의 “갱(坑)”은 구덩이 갱인 것을 생각할 때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낼 수 있다. 즉 “온돌”은 구들, 즉 항(沆)의 한자표기로서 조선시대 초기부터 써 왔으며, 구들을 놓은 실전체는 “온돌방(溫突房)
1. 온돌의 역사
우리 나라에서 구들이 언제부터 설치되기 시작하였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일부에서는 함경북도 웅기지방의 청동기시대 움집에서 발견된 구들의 흔적을 예로 들기도 하지만, 아직은 불확실한 단계의 자료일 뿐이다. 그러나 그때 구들의 구조법이 시험되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