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방강(翁方綱)의 경학(經學)·금석학(金石學)·서화(書畵)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1819년(순조 19) 문과에 급제하여 세자시강원설서(世子侍講院說書)·충청우도암행어사·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24세 때 연경(燕京)에 가서 당대의 거유(巨儒) 완원(阮元)·옹방강(翁方綱)
옹방강을 만나 완원과는 사제지간을 맺고 자신의 별호를 완당이라고 칭하였으며, 옹방강은 추사의 학문에 반하여 "경술문장 해동제일"이란 휘호를 내리고 즉석에서 사제지의를 맺었다고 한다. 추사는 이렇게 북경에서 완원, 옹방강등의 학문의 대가를 만나 경학과 금석학, 서예에 대해 깊이 연구할 기
친분이 깊었음
실사구시 학문, 서예 등을 배우게 됨
추사 김정희
청-연경 방문
24세 때 아버지 김노경의 자제군관으로 연경에 가게 됨
대학자 옹방강과 완원을 만나 금석학, 고증학 등을 배우게 됨
옹방강, 완원과 사제지간을 맺고 자신의 호를 추사로 지음
“경술문장 해동제일(經術文 海東第一)”
옹방강 등과 돈독히 교류하면서 이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금석문의 감식법과 서법 등을 익혔고 귀국 후에도 서신 왕래가 잦았다. 1816년 김경연과 북한산에 있는 진흥왕순수비를 판독하여 그 전까지의 잘못을 시정하였다. 1819년 문과에 급제하여 암행어사, 예조참의, 검교, 대교, 시강원 보덕 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