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성 3개, 성량 115개, 문 4개, 암문 16개, 우물 80개, 샘 45개등을 만들고 광주읍의 치소를 산성 내로 옮겼다. 이때의 공사에는 벽암 각성대사를 도총섭으로 삼아 팔도의 승군을 사역하였으며, 보호를 위하여 장경사를 비롯한 7개의 사찰이 새로 건립되었으나, 장경사만이 현존한다. 그 뒤 순조 때에 이르기
옹성 중앙에는 적에게 뜨거운 물을 쏟아 부을 수 있는 오성지라는 시설도 갖추었다. 성문 좌우에는 적을 감시하는 적대도 만들었다. 성벽에는 멀리를 조망하는 공심돈도 세우고 대포를 설치하는 포루도 갖추고 성벽을 돌출시키는 치성도 만들었다. 이런 시설들이 대개는 새로 입수한 중국의 서적에서
■ 남한산성 소개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기 전까지 항전했다고 해서 유명한 남한산성은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약24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는데 행정구역으로는 광주시, 하남시, 성남시에 걸쳐 있으며 성 내부는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속해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남한산성은
5) 병자호란 당시의 남한산성의 의미 : 남한산성의 돌맹이, 기왓장 하나까지도 나라를 지키기 위한 것 이었다. 남한산성은 우리역사 속에서 우리민족이 당한 침략에 대항한 항전 정신과 독립정신이 깃들어진 장소이다. 병자호란 당시에도 도성과 한강유역을 방어하는 군사적 최적의 요충지로서 비록 항
옹성이나 적대등과 같은 시설이 있다는 점이 차이점이라 할 수 있었다. 성 전면에 벽돌로 쌓은 반원형의 옹성은 적군이 성문을 쉽게 부수지 못하게 하며, 만약 옹성 안으로 적군이 들어오게 된다하더라도 사방에서 공격을 받게 되므로 적군을 독 안에 든 쥐 꼴이 되게 만든다고 한다. 그래서 옹성은 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