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수인이 살았던 명대사회는 각종 사회문제가 드러나게 되는데 황실, 환관 등은 정치적 특권을 이용하여, 토지겸병의 추세가 날로 증가하였으며, 당쟁과 관료의 부패, 환관의 전횡, 그리고 재해의 빈발 등으로 국가기강이 파괴되고 있었다. 여기에 백성들에게 많은 세금을 부과하여서, 많은수의 백성들
Ⅰ. 왕양명(왕수인)의 생애
중국 명(明)나라의 철학자 정치가. 본명은 수인(守仁). 자는 백안(伯安), 호는 양명(陽明). 저장성〔浙江省〕 태생이다. 18세에 주자학(朱子學)을 배웠으나 의혹을 품고, 시문과 도교 불교 등에 탐닉하다가 후에 유학으로 복귀하였다. 28세에 전시(殿試)에 급제하고, 35세 때 환관
제 1절 왕수인(王守仁, 1472~1528)
가혹한 전제정치에 대해 반발하는 사상의 대두
: 전제정치 자체를 직접 공격하지는 못했으나, 전제정치에 이용되는 정통의 학술을
타파하려고 하였다.
⇒ 왕수인이 이러한 풍조를 열었고, 이지는 이를 극단적으로 전개시켰다.
: 이는 유(儒)로써 유(儒)를 공
왕수인이 살았던 명대사회는 각종 사회문제가 드러나게 되는데 황실, 환관 등은 정치적 특권을 이용하여, 토지겸병의 추세가 날로 증가하였으며, 당쟁과 관료의 부패, 환관의 전횡, 그리고 재해의 빈발 등으로 국가기강이 파괴되고 있었다. 여기에 백성들에게 많은 세금을 부과하여서, 많은 수의 백성
1. 머리말
중국의 사상에 대한 이해 없이는 우리나라의 윤리·철학적 사상을 이해하기 힘들다. 그만큼 우리는 오랜 옛날부터 정치, 경제 등의 여러 분야에서 중국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특히 철학적 사상면에 있어서는 중국의 것을 최고로 치부하여 수용하였다. 공자, 맹자, 순자의 학문에서부터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