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연을 정복
26대 태왕, 영양왕. 수나라 30만 대군 양성 소식에 선공, 수나라 고구려를 공격하려고 하였으나, 전염병과 해전에서 패배, 많은 물자와 병기 노획으로 수나라는 화친을 함(598년)
612년 수 양제의 1차 침입 (살수대첩) 수나라 패배
613년 수 양제의 2차 침입 (요동성 전투) 수성전략으로 이김
광개토대왕은 374년 고구려 고국양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384년, 소수림왕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고국양왕이 즉위하였으며 그로부터 2년 뒤, 386년에는 태자로 책봉되었다. 그리고 5년 뒤인 391년, 아버지 고국양왕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당시 고구려는 백제와의 전쟁에서 패하여 전대의 왕인 고국원왕
1. 서론
민족사의 영광을 위하여 명멸하였던 숱한 인물도 이러한 성격을 지닐 때 우리는 그들에게 역사적 인물로서의 의미를 부여한다. 이러한 점에 있어 역사의 태동기를 지나 뚜렷한 실체로서 부각되는 인물로 광개토대왕을 들 수 있다. 고구려의 정복국가로서의 성장과정 중에서 광개토대왕 시대
요동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다.
또한 고구려는 314년에 낙랑군 남부도위였던 대방군도 공격해서 얼마 후 이를 함락하였는데, 《자치통감(資治通鑑)》에 의하면 이때 낙랑 ·대방의 두 군에 거점을 두고 있던 요동인(遼東人) 장통(張統)이 고구려 미천왕(美川王)과 연년(連年) 공방전을 벌이다가 민호(
한성(漢城)을 침공하여 남쪽 영토를 임진강과 한강까지 확장시켰고, 신라의 내물왕을 원조하여 왜구를 격퇴하였다. 또한 북으로 후연을 쳐서 요동을 완전히 차지하고, 아울러 요서 지방의 일부까지 진출하였다. 광개토대왕은 숙신과 동부여를 복속시켜 만주와 한반도에서 우월한 위치를 확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