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플라톤이 대화편을 통해 그의 모든 철학을 표현하려 의도했다고 보기 힘들다. 그는 대화편을 구두 철학의 보조 자료로 간주했을 것이다. 이런 입장은 현대의 상식과는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대화편에 저술된 내용의 의미를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현
신화들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것들이 정리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리스가 기원전 3세기와 2세기에 침략을 당하고, 무역이 지중해 연안으로 확대되어감에 따라 여신을 숭배하던 토착문화는 외래의 가부장적 개념에 의해 붕괴되었었으며 아시아적인 우주론이 금속 및 향신료와 함께 수입되었고, 외국
신화에 나타나는 비지성적인 요소들을 합리주의에 입각하여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합리주의적 사고 앞에 신화가 살아남을 확률의 거의 없다. 서사시 작가들에 의해 시작된 신화에 대한 합리주의의 공격은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를 비롯한 철학자들에 의해 더 강화되었다. 시가 갖는 허구성을 용납할
신화적으로 우주발생론을 전개하던 것에 비하면 매우 합리적인 것이다. 철학자로서의 그의 위치 정립은 바로 이에 기인한다. 즉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고 했던 것에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만물이 거기서 생기고 거기에로 돌아가는 궁극의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아낙시만드로스
신화적이기는 하지만 동성애를 인간의 본성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거기에 등장한 남녀성에 관한 이야기는 단연 눈길을 끌었다. 원래 인간은 머리 둘 팔 다리가 각각 넷 성기가 두 개 달린 동물이었는데, 남성 여성 남녀성의 세 가지 성이 있었다는 것이다.(이들이 어떻게 화장실 문제를 해결했는지 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