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론
작시론에서 이인로는 시는 언어의 의미가 제대로 갖추어진 경지에 이르러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데, 시라는 것은 언어의 구조물 내지는 예술이라는 인식을 가졌던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이인로가 옛 사람의 문장과 문체를 갈고 닦아 그 표현을 끌어서 쓰는 “용사”를 사용했다는 것과 관
1. 서 론
신의와 용사의 문제는 한국문학사상 평론의 출발시기로 볼 수 있는 고려조 시화에 있어 가장 관심 있게 다룰 수 있는 문학론이다. 고려 문단은 송시의 영향을 크게 받아 송의 대표적인 시인 소동파(蘇東坡)를 비롯하여 그를 이은 강서시파(江西詩派)의 시문이 성행하였고, 많은 이들이 그
용사를 즐겨 썼으나 모방에만 그치지 않고
뜻 풀고 심상 더해 점화*에 이르렀다
공자의 술이부작(述而不作)을 시작(詩作)의 틀로 삼고
도잠을 좇았으나 은일을 꿈꾸지 않고
세상과 마주서되 사물에 얽매임 없이
공명은 천명을 기다릴 일, 화귀거래사* 그의 삶
*파한집: 이인로가 지은 우리나
신의와 용사
Ⅰ. 서론
문학론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잘라 말할 수는 없다. 향가를 두고 논란을 벌이는 것은 신라 때 이미 일반화되었으리라고 생각된다. 고려 전기까지의 한문학 작가들 글에 비평이라고 할 수 있는 발언이 여기저기 있었다. 문학이 성장하면서 문학을 하는 자세와 방법에
1. 서 론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을 설명하기 위해 "학문과 경험의 중간개념"인 "테크네"를 설정하였다. 이것은 관점론의 당위성에 대한 한 입장으로 볼수 있는데 문학에서도 이와 같이 관점론을 적용함으로서 시대와 사상을 분류할 수 있겠다.
문학을 보는 관점은 즉, 비평관은 크게 4가지로 분류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