却說晉王石敬?, 旣入潞州, 卽欲引軍南向。
각설진왕석경당 기입노주 즉욕인군남향
각설하고 진왕 석경당은 이미 노주에 들어가 군사를 이끌고 남쪽을 향하려고 했다.
契丹主耶律德光, 意欲北歸, 乃置酒告別, 擧杯語敬?道:“我遠來赴義, 幸蒙天佑, 累破唐軍。今大事已成, 我若南向, 未免驚擾中原,
(2) 불국사의 유래 및 설명
경북 경주시 진현동 토함산 기슭에 있는 절로서 대한불교조계종 11교구본사(敎區本寺)의 하나로 그 경내(境內)는 사적 및 명승 제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95년 세계문화유산목록에 등록되었다. 경내면적은 11만 7541평이다. 불국사 창건에 대하여는 두 가지 설이 전한다. 그
Ⅰ.창덕궁은 조선왕조 제3대 태종 5년(1405)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어진 궁궐이며 창건시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편전인 선정전, 침전인 희정당, 대조전 등 중요 전각이 완성되었다. 그 뒤 태종 12년(1412)에는 돈화문이 건립 되었고 세조 9년(1463)에는 약 6만2천평이던 후원을 넓혀 15만여평의 규모로 궁의
용장에서 공부를 하다가 ‘격물치지’의 참뜻을 깨쳤다고 한다. 이것을 ‘용장대오(龍場大悟)-용장에서의 큰 깨달음’ 이라고 한다.
여기서 그가 깨달은 것은 ‘격물’ 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주희는 ‘격물’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격格이란 이른다(至)는 것이고, 물(物)이란 일(事)과 같다.
용장역(龍場驛)에 머무는 동안 “성인의 도는 내 성(性)안에 자족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여러 관직을 거치고, 반란군을 진압하는 등 큰 무공을 세웠고, 만년에 소수 민족 폭동을 평정하고 돌아오는 도중 병사했다. 그의 군사적, 정치적 업적은 송명 도학자로서는 독보적이었다. 만년에는 주자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