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문화를 외치다.
용주사 중심에서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범종
용주사의 범종(국보 제 120호)
오른쪽 옆면에 새겨진 명문 내용
“연기성황산 후신 화산의 갈양사 후신용주사는 신라 문성왕 16년 5월에 창건되었고, 동시에 이 범종을 주조하였다.
불기 2950년 7월 주기 석 송굴 대련”
뒷면에 새겨진
용주사 가람(*스님들이 한데 모여서 수행 생활을 하는 장소)
지금의 용주사의 모습은 당시의 골격을 커다란 변화없이 유지하고 있음.
대웅전을 기준으로 천보루와 삼문을 중심축으로 하여, 좌우에 승당과 선당(현재의 나유타료와 만수리실), 좌우 약간 뒤편에 칠성각(지금의 시방칠등각)과 향로전(봉향
조사를 시작하며
2004년 1월 SBS ‘백만불 미스터리’ 라는 프로그램에서 김홍도와 샤라쿠가 동일인물일지도 모른다는 방송을 했었다. 최초의 발견자는 이영희 교수로 일본인도 번역하기 힘들다는 만엽집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가집(歌集)
을 번역한 사람인데 이 교수의 주장이 만엽집 중에 샤라쿠에
용주사 대웅전에 삼세여래후불탱화를 그렸고, 1795년(정조19) 연풍현감)이 되었다가 곧 사임하였다. 이듬해 왕명으로 용주사의 부모은중경 삽화를 그렸으며, 1797년 정부에서 간행한 오륜행실도의 삽화를 그렸다. 산수화·인물화·신선화·불화·풍속화에 모두 능하였고, 특히 산수화와 풍속화에 새로운 경
용주사 대웅전에 훈염기법(暈染技法)으로 입체감을 살린 삼세여래후불탱화를 그렸다. 1791년에 다시 어용화사로 선발되어 정조어진 원유관본(遠遊冠本) 제작에 참여한 공으로, 그해 겨울 충청도 연풍 현감에 임명되어 1795년 정월까지 봉직했다. 현감으로 일한 경험은 김홍도가 민중들의 삶을 자신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