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태는 곧 우문각을 세자로 세웠다.
西魏主廓三年八月, 泰北巡渡河, 還至牽屯山, 忽然遇病, 病且沈重, 急發使馳驛, 往召中山公護。
서위주곽삼년팔월 태북순도하 환지견둔산 홀연우병 병차침중 급발사치역 왕소중산공호
서위 군주 탁발곽 3년 8월 우문태는 북쪽으로 순찰을 가 황하를 건너 견둔산
작위를 봉해 주고, 새로 점령한 지역의 통치를 위해 자사, 태수, 현령 등의 지방장관을 두었다. 이외에도 그는 部落을 해산하여 分土定居 하도록 하고 屯田을 실시하는 등 대대적으로 農業 생산을 發展시켰다. 이로 인해 북위의 국력은 날로 강성해졌고 아울러 급속히 封建化의 역사과정을 완성했다.
탁발부족이나, 그들과 결합된 한인귀족과도 그 계보가 다르다. 따라서 이들 관롱집단을 위·진 남북조의 호족적 성격보다는 북위 말의 관료적 성격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는 문제가 수·당정권의 민족성분의 문제이다. 다시 말하면 우문씨의 북주는 선비족의
호수공 익회사망 편시삼공명위 이피별인확거 대총재우수제공헌 대사마경수육통 정권병권 일사아몰유도수 심상앙앙
奢望 [sh?w?ng] 지나친 욕망
到手 [d?o//sh?u]① 손에 넣다 ② 획득하다 ③ 받다
위공 우문직은 훈구대신이 사망해 자기가 우문호를 죽이는데 첫째 공로가 있다고 여겨 더욱 지나친 욕망을
호가 주도권을 잡고 적극적으로 16국을 건설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호한체제는 5호 16국을 거치며 종족주의의 전개와 한민족간에 마치 물과 기름이 공존하는 체제를 이루지만, 북위의 한화정책을 정점으로 융합하기에 이른다.
Ⅱ. 본론
1. 部落解散과 徙民政策
1) 비수전의 대패 - 종족주의의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