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을기내를 꾀어내어 잡아서 죄를 사면받았는데 이로부터 유명해졌다.
그 후 전라도감사 이광에 의해 군관으로 발탁되어 전라도 조방장·선전관 등이 되고 1589년(선조 22년) 1월에 비변사가 무신들을 다시 불차채용하게 되자 이산해와 정언신의 추천을 받았다. 7월에 선조가 다시 비변사에 "이경록과 이
Ⅰ. 서 론
우리나라에서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말아야할 전쟁이 6·25와 임진왜란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일본군에 의하여 많은 백성이 희생을 당했다. 그것을 경계하고 후세에게 두 번다시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쓴 책이 서해 유성룡의 징비록이다. 《징비록》은 서책으로는 드물게 국보
Ⅰ 서론
임진왜란은 글자 그대로 임진년에 왜가 난을 일으킨 사건이다. 그런데 ‘왜’라는 비하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속에는 주관적인 감정이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객관적으로 상대방을 파악하지 않고 무시하거나 경멸한다. 여기에는 국가와 국가 간의 대등한 전쟁이란 시각은 존재
4. 한국형 리더십
한국형 리더의 조건은 우리 역사에서 찾아야한다. 그 구체적인 바탕은 <조선왕조실록>이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은 서양의 리더십 이론이 성립되기 이전의 사실들을 아주 정확하게 적어놓고 있다. 지식인의 참모습은 어떤 것인가. 지식인의 참모습을 지키면서 산 사람들은 어디
(3)한산도 대첩
한산도대첩은 임진왜란의 3대 대첩 중 하나로 1592년(선조 25) 음력 7월 8일 한산도 앞바다에서 이순신 휘하의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크게 무찌른 해전으로, 이 전투에서 육전에서 사용하던 포위 섬멸 전술 형태인 학익진을 처음으로 펼쳤다.
음력 7월 4일 출발 6일에 노량에 이르러 경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