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무라 간조이다. 우치무라 간조의 성서집회에서 가르침을 받으면서 그는 하나님을 만난다. 무엇보다 우치무라의 사상인 일본적 기독교와 무교회주의에도 영향을 받는데, 김교신인 무교회주의와 조선적 기독교를 강조하게 된 원인이다. 김교신은 기독교를 접하면서 그의 가치관은 그게 변한다. 유
우치무라 간조를 만난다. 그는 1920년 처음 교회에 갔고, 몇 개월밖에 교회를 다니지 않았지만 교회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교회 생활을 통해 조직 교회에 대한 한계점을 알 수 있었다. 우치무라 사상의 핵심은 일본적 기독교와 무교회주의다. 일본적 기독교는 외국인의 중재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일
우치무라 간조를 만난다. 몇 개월만 교회를 다녔지만, 교회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교회 생활을 통해 조직 교회에 대한 한계점을 알 수 있었다. 일본적 기독교는 외국인의 중재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일본인이 직접 받은 기독교를 의미한다. 무교회주의는 신앙보다 교회를 우선시하는 것, 교회와 기독
우치무라 간조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 1861-1930) : 일본 메이지 · 다이쇼시대 그리스도교의 대표적인 지도자 · 종교가. 무교회주의 그리스도교 사상가를 배출하여 현대 일본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김교신 · 함석헌을 통하여 한국에도 영향력을 미쳤다.
의 사상에도 영향을 받는다. 그도 역시 비전
우치무라 간조와의 성경공부를 통해 그는 무교회신자가 된다. 그리고 수차례 감방 생활을 하면서 노장 사상의 유연함과 초월성에 매력을 느끼고 다양한 종교적 색채를 수용하게 된다.
이후 1950~80년대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인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시대의 지성인으로 『사상계』, 『씨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