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정운
Ⅰ. 서
본디 언어의 문자화는 그 고유요소와 함께 외래요소도 표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훈민정음이 창제되어 널리 쓰이기 이전까지 우리 만족은 구어와 문어를 달리 쓰는 言文二致 현상을 겪어왔으며 그만큼 외래어로서의 한자, 한문의 유입이 상당했다. 더욱이 조선은 성리학 위주의 척불숭
『계림유사』는 북송 손목(孫穆)이 편찬한 일종의 견문록이며, 대역어휘집이다. 손목이 1103년(고려 숙종 8년)에 서장관으로 고려에 와서 당시 고려의 조제(朝制), 토풍(土風), 구선(口宣), 각석(刻石) 등과 함께 고려 시대의 어휘와 어구를 채록하여 편찬한 책이다.
현재 단행본으로는 전하지 않고 청나라
우리말의 음운체계의 수립은 훈민정음 창제이후부터일 것이다. 그래서 15세기 이후의 국어 음운사는 명백하게 전개되어 있으나, 그 이전의 음운체계를 수립하는 데는 표기 자료의 불확실성과 결핍으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불확실하고 한정된 언어 자료를 바탕으로 훈민정음 창제 이후
『切韻(절운)』系의 韻書
* 중국어역사음운학 시대구분
중고음(中古音, Ancient Chinese) ; 남북조 ~ 수당(600)시기의 음
중고음 연구를 금음학(今音學)이라 한다.
→ 중고음 再構
중고음 연구의 양대 문헌자료로 꼽을 수 있는 것은 韻書와 韻圖이다.
중고음체계를 재구하기 위하여 『切韻(절운)』을 대신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