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인은 항상 마한인으로 왕을 삼으며 대대로 세습하나 자립하여 왕이 될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 翰苑(한원)에 인용되어있는 魏略(위략)의 내용)
당 초기의 660년에 편찬된 翰苑에 인용되어 있는 내용과 魏略(위략)을 비교하여 보면 가)1의 삼국지 弁辰傳에 의하면 12국을 통속하고 있다는 진왕은
이것은 삼한의 소국들이 개별 세대단위로 취사를 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삼국지의 내용 중 ‘온 세대가 함께 거처하며 어른과 어린이,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없었다.’는 표현에서 하나의 세대는 단혼 부부와 혼인하지 않은 자식들로 이루어져 있었음을 가정 할 수 있다. 이러한 고고학적, 문헌적 사
마한은 한강유역으로부터 충청·전라도에 걸쳐 있었으며, 진한은 경기·강원도 일부, 변한은 낙동강유역 경상도에 비정된다. 삼한사회에 대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기록은 《후한서》 <동이전(東夷傳)>이며, 이를 부연하여 정리한 것이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동이전이다. 이에 의하면 마
기록했던 것이다. 반면의 나관중의 역사관은 촉한정통론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을 계승하고자하는 유비와 이에 상응하는 조조. 작가는 유비 쪽으로 치우쳐 소설을 전개하는데 작품 구석구석에 조조를 악인으로 평가하는 부분이 적지 않게 있다. 현재 삼국지연의의 내용 중 객관성이 없는 사실에 대한
1.필자는 과학적인 역사와 비과학적인 역사를 어떻게 구별하는가?
필자는 역사를 크게 ‘사실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의 역사’로 구분하고 있다. ‘사실로서의 역사’는 과거에 일어났던 무수히 많은 객관적인 사실을 의미하고,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과거의 사건을 바탕으로 역사가가 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