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두보[杜甫 712~770]
중국 시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인으로 시성(詩聖)이라 불리 운다. 자는 자미(子美)이며 호는 소릉(小陵)이다. 그의 조상인 두예(杜預)는 명장(名將)이자 사학가였고 조부 두심언(杜審言)은 당초의 저명한 시인이었다. 이러한 배경 탓에 그는 정치에 뜻을 두었고 소년시절부터 낙양(洛
위응물(韋應物, 737~804), 맹호연(孟浩然, 689~740), 유종원(柳宗元, 773~819)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 가운데에서도 왕유는 자연시(自然詩)를 대표하는 중심 인물로 평가를 받는다. 그의 시는 《왕우승집(王右丞集)》으로 전해진다.
한편 그는 정건(鄭虔), 오도자(道子) 등과 함께 중국 남종화(南宗畵)의 개조(
위응물柳유종원)라고 일컬어지는 자연파 4시인중 한명인데요,
그가 있었던 유주는 산수와 풍경이 뛰어나 시간이 생기면 항상 산수풍경을 감상하고 명승지를 찾아다니며, 시문짓기를 즐거움으로 삼았고 한적한 전원산림의 생활을 노래한 전자연시를 지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그의 글의 내용과 형식미
위응물의 후예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을 근거로 韋와 章의 글자모양이 비슷해서 발생한 착오로 짐작된다고 하였다. (임형택, 전기소설의 애정주제와 위경천전, 『동양학』22, 단국대 동양학연구소, 1992, 38면.)
<위경천전>은 연구초기부터 작자 고증과 추론의 과제가 쟁점으로 제기되었다. 작자 문제는 『
위생
명(明)나라 만력(萬曆) 연간에 위생(韋生)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금릉 사람이다. 이름은 악(岳)이고, 자(字)는 경천(敬天)이며, 옛날 당(唐)나라 때의 현인(賢人)이었던 위응물의 후예이다. 그는 타고난 자질이 총명하고,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재주가 빼어났으며, 열 다섯 살 때 문장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