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왜에서의 백제유민
백제가 서기 660년에 신라와 당나라 군사에게 멸망시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은 일본에 있던 그의 누님인 제37대 '제명(齊明, 사이메이)천황'에게 구원군을 요청했으나 도중에 제명천황이 죽자, 일찍이 왜로 와 있던 의자왕의 아들 인 중대형(中大兄, 나카노오에)이 이끄는 구원
1-1) 唐으로 간 백제 유민들
당시 당으로 보내진 이들의 행적에 대해서는 의자왕과 태자 융 등 일부 귀족에 대해서만 그 행적을 알 수 있을 뿐 대부분 포로들의 행적은 알 길이 없다.
의자왕은 당에 끌려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병사하였고, 태자 융은 당의 수군을 거느리고 백제 부흥운동군의 거점인
3. 유민들에 대한 신라의 대우
텍스트 <진한>에는 “진한(辰韓)의 노인들이 스스로 말하기를, 진(秦)나라에서 망명한 사람들이 한국(韓國)으로 오자, 마한이 동쪽 경계의 땅을 떼어 주고 서로 불러 무리를 이루었다” 김원중 역, <삼국유사>, 을유문화사 2005, p. 63
라는 말이 있고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1
얼마 전 끝난 드라마 주몽을 아주 즐겨보았다. 다물군을 이끌고 유민들을 이끌며 우여곡절 끝에 고구려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뛰어난 리더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역사왜곡과 관련해 끊임없이 이슈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단순한 퓨전사극으로 이해하고 드라마 속에서 보여준 주몽의
유민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전통이었던 백제 조각양식으로써 조성한 귀중한 예로, 따라서 전반적인 양식은 7세기 초로 편년해도 좋을 정도로 고식을 띠고 있다. 비록 시대는 늦지만 구양식을 답습한 것이므로 호류지 삼존상의 계보추정에 귀중한 단서를 제공한다. 재료 역시 돌이지만 높이 43cm의 소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