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호가 천거하여 선공감 감역으로 임명되었는데 그의 나이 50세에 처음 얻은 벼슬이었다. 다음 해 1월에 부인이 51세로 별세하고 그 뒤 연암은 부인의 부덕을 기리며 독신으로 여생을 보낸다. 52세가 되던 겨울 공선감역의 임기가 끝나고 다음 해 6월에 평시서(平市署)의 주부로 승진하였고, 55세 때 한
유언호의 추천으로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으로 임명됨
- 1791년 안의 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일대
현감(安義縣監)에 제수
8) 여생을 마치다
- 노병으로 벼슬 사임하고 서울로 돌아옴
- 1805년 (69세) 10월 20일 별세
2. 인간 박지원
2.1 ‘연암’과 그의 생김새
- 燕巖 : 제비바위골, 그가 한 때
들어가며
연암 박지원은 1737년(영조 13년)에 한양에서 출생하였다. 연암의 집안은 대대로 벼슬이 높던 명문대가였으나 그는 조실부모하여 조부 박필균의 손에서 길러졌다. 조부가 죽고 난 후부터 그의 곤궁한 삶이 시작되었다. 연암은 50 세에 친구인 유언호의 천거로 첫 벼슬을 하기까지 재야의 선
Ⅰ. 서 론
연암 박지원은 조선후기 실학자로서 열하일기 작품이 연상된다. 그는 조선 후기의 문신, 실학자이자 사상가, 외교관, 소설가이다. 관은 반남(潘南), 자는 미중(美仲) 또는 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 연상(煙湘), 열상외사(洌上外史)이고,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1765년 처음 과거에 응시한
1. 머리말
근대성을 갖는 한국 근대문학의 기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어왔다. 임화는 근대화를 서구화로 인식하며 개화기 이후를 근대문학으로 보았고, 이러한 견해는 백철과 조연현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한국 문학의 특수성을 깨닫지 못하고 과거와의 단절적 인식으로 불연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