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의 본질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유학과 유교라는 어의는 위에서 언급한대로 역사상 용례와 현재적 개념 생성의 과정에 의해 규정된 의미로 통용되는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보다 먼저 유(儒), 학(學)교,(敎) 등의 개념은 그 원래의 본연적 의미로 쓰이고 통용되는 것이 더 일반적인 성
유학의 입문서인 근사록은 주돈이, 장재, 정호, 정이의 말씀을 간추린 것으로 정이의 말씀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대학과 중용을 예기에서 따로 뽑은 것도 정이에서 시작되었고 리와 기의 구별 성즉리사상, 거경의 강조등도 정이에게서 이어받아 주희가 완성한 것이다. 그럼에도 정이와 주희사이에는 차
공자세가와 주공세가를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
Ⅱ. 仲
1. 금문(今文)과 고문(古文)
① 금문
위에서 언급하였지만 진시황의 분서갱유 후에 많은 지식인들은 은둔하는 생활을 하여야 하였고, 많은 경서들이 실전(失傳)되었기 때문에 한대에 들어 유학자들은 구전과 기억에 의지하여 실
도구가 되어 싸웠던 것이다.
그럼 현재 우리가 공부를 하고있는 사마천(司馬遷 , BC 145 ?~BC 86 ?)에게 있어서 금문과 고문은 어떠했는지, 사마천은 어느 학문에 중점을 두었는지, 금문에서의 문왕인 공자와, 고문에서 예의 시작인 주공을 서술해놓은 공자세가와 주공세가를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
시작되었다. 여기에서 사사로이 배운 학문은 유학(儒學)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진나라가 망하는 과정에서도 진나라와 유학의 관계를 나타내 주는 사건이 드러난다. 진승이 진에 대항하는 폭정을 일으켰을 때 대규모의 유학자들이 예기(禮器)들을 싸들고 그에게 귀속하였다. 이러한 예는 유학과 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