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조선은 임진(壬辰) ․ 병자(丙子)의 양난(兩亂)을 겪은 후, 사회는 사회대로 피폐해져 민(民)들의 고통은 가중되었었고, 정계는 정계대로 군권(君權)이 약화되어 군주 중심의 조선왕조가 존속 자체에 위협을 받고 있었다. 백호 윤휴(1617-1680)는 이러한 조선의 상황을 타개해 나가기 위해 여러 면
2. 학문적 연원
허목, 윤휴, 유형원이 17세기 중후반 근기남인을 대표하는 학자임은 널리 알려져 왔으나, 이들의 학문적 연원에는 서경덕과 조식의 학맥을 기반으로 하는 북인北人들의 학문적 영향력이 컸다는 공통점에 주목해 보았다.
1) 허목
허목의 학문적 연원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는 이
1. 송시열의 생애와 정치
1) 출생에서 호란의 치욕까지
송시열(1607~1689)은 조선 14대 왕인 선조 40년(1607년) 충북 옥천에서 송갑조와 곽씨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본관은 은진이고 자는 영보이며 호는 우암이다. 어려서 아버지에게 학문의 기초를 배우다가 8살 때 부친의 이종인 송이창의
Ⅰ. 서 론
1. 인심도심설의 유래
인심도심설은 원래 "인심人心은 위태롭고 도심道心은 은미하니, 정精하고 일一해야 진실로 그 중中을 잡으리라"라는 ⌜상서尙書⌟, ⌜대우모大禹謨⌟의 글에서 기원한 것으로, 이것은 자기 내부의 도심과 인심을 뚜렷이 구분하여 오직 도심으로 중심을
윤휴와 침묵의 제국을 읽고
도입
조선시대 붕당의 폐해로 아깝게 죽은 사람이 참 많은데, 그 중에서 가장 아쉬운 사람이 조선 중기의 유학자이자 정치가인 백호 윤휴가 아닌가 한다. 경기도 여주 집 옆에 있던 백호(白湖)를 그의 호로 사용했지만, 호수보다는 좀더 강인한 느낌의 호랑이가 내가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