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의 행위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주님과 구주로서 우리를 대하신다(C.D. II/1,p272-321). 이러한 사랑의 표현은 하나님 자신이 선택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자유롭게, 그리고 사랑으로 행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의 행위는 곧 은혜를 인간에게 베푸는 것이다.
율법에 관한 견해는 지난 반세기 동한 어떤 신학적 주제보다 더 큰 변화를 보여주었다 따라서 바울신학은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1. 바울의 율법 이해에 관한 논쟁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운동 시대에 로마 카톨릭 교회는 바울의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율법의 행위로냐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
율법이다. 율법은 두 가지 면에서 어려움을 주는데, 그것은 언어자체의 난이 함이고, 다른 사회에서 명령하고 요구하는 법규이기 때문이다.
2. 율법 무용론
율법은 행위의 법칙이다. 모든 법률은 인간의 행위를 규율하는 것이지 인간의 심정이나 내적 상황을 규율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세속 실정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여기서 행위는 단순하게 일반적인 선행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율법의 행위이다. 존 지슬러, 조갑진 역 『로마서 주석』 (기독교문서선교회, 2002) p162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당대 완전한 자로서 선민으로 부름받은 이스라엘의 조상이었다고 생각하였다. 창세기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