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학은 철학적 의미까지 깊이 파고들지는 못하고 소승적 경지에 머물고 만 감이 있다.
율종의 성행은 위덕왕 35년(588)에 일본 여승 젠신니(善新尼) 등 수인이 백제에서 율학을 배우고 돌아가 일본 율학의 선구가 되었던 사실로도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발달한 율학의 내용이 어떠하였는지는 분명
Ⅰ. 고려시대 교육기관 국자감
1. 국자감의 창설
국자감은 국립최고학부로서, 성종 즉위 11년째인 992년에 창설되었다.
2. 국자감의 성격
국자감은 종합대학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국자학, 대학, 사문학, 율학, 서학, 산학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입학 자격은 철저히 신분에 의해 결정되었다.
율학, 서학, 산학 6학이 각 단과대학 성격으로 구성되었으며, 모두 육학(六學)으로 예부에서 관장하였다. 국자학, 태학, 사문학은 유학과로서 박사와 조교가 있었으며, 율, 서, 산학은 잡학으로서 해당 기술을 익히는 것이며 박사만 두었다. 유학과인 국자학, 태학, 사문학은 천한 일에 종사한 자와 가도(
율학, 서학, 산학 등 6학의 분과가 있었으나, 국자학, 태학, 사문학 등의 3학은 모두 유교의 경전과 문학을 전공하는 곳으로 고등관리의 양성을 위한 기관이었고, 율학, 서학, 산학 등의 3학은 일종의 직업학으로 각기 전문직에 종사할 관리를 양성하기 위한 기관이었다.
입학자격은 각 학에 따라 차이가
- 송(宋)대의 학교 교육은 대체로 당나라제도를 이어받아 중앙에는 국자학, 태학, 4문학, 종학(宗學), 무학(武學), 율학, 산학, 서학, 화학(畵學), 의학이 있었다. 이 가운데 황실 자제만을 교육하는 종학을 제외하고 학생의 자격은 당대에 비해서 평민화 되었다. 즉 국자학의 학생은 대부분 고관의 자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