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삶을 한눈에 보고 느낄 수 있는 위의 그림은 '티베트의 고귀한 스승들'이란 포토앨범속의 삶과 죽음이라는 이미지이다. 이처럼 삶과 죽음이라는 두 단어는 서로 극과 극을 표현하는 단어이지만 그 자체는 분리될 수 없다. 즉 삶의 끝은 죽음이고, 산다는 것 자체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행위다.
한 체험을 통해서 더욱 확고해진다. 토마스 만은 쇼펜하우어로부터는 정신의 이념을, 니체로부터는 생의 이념을 배우게 되는데, 그것을 자신의 천성적인 이원성과 결부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생과 정신의 이원성은 그의 작품세계의 근원적인 요소가 된다.
토마스 만은 이런 이원성 내지는 대립을 무엇
작품에서 매춘은 반윤리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오직 생존의 문제로만 제시된다. 따라서 매춘을 하는 여성이나 사주하는 남성 모두에게서 죄의식이나 수치심은 찾을 수 없다. 나아가 남편들이 아내들의 매춘을 독려할 정도로 참담한 상황을 참담하지 않은 듯 위장하는 작가의 해학성은 그런 삶을 살아갈
한 숱한 변화 속에서 유럽예술가들의 나치의 공포를 피해 뉴욕으로 이주하였으며 이러한예술가들의 대이동의 여파를 타고 뉴욕의 미술가들의 작품생활은 점차 풍요로와 졌다. 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혼한으로 불안과 공포, 그리고 전통과 질서에 대한 불실과 부정이 만연되었던 시기에 뉴욕은 세계 예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2003, 76쪽 참조.).
에 대립되는 사조로, 고전주의에 이어서 서구에 나타난 문예사조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낭만주의가 전개 된 시기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체에 걸쳐 있다. 낭만주의에 대해 고찰을 하다 보면 곧잘 미궁에 빠지기도 하는데 이는 낭만주의의 범주와 개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