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L.H.모건은 원시사회가 씨족 포족(胞族) 부족 부족동맹으로 발전한다는 학설을 제기하였으며 그 결과 원초적인 국가형태의 기저에 있는 친족 씨족과 같은 혈연집단의 구조에 관심이 집중되었고 그리하여 사회형태를 혈연적인 구조와 기능에서 성립하는 것과 재산 지역이라는 물적 관계를 기
읍루는 부여와 고구려와 적대적 관계를 가지기도 하는데, 자신의 영토에 그 후신인 말갈을 가만 둔다는 것은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고 따라서 말갈은 숙신 읍루와 다른 개체인데 중국에 사가들이 잘못 이해했을 수 있으면 혹은 고구려에게 말갈은 적대민족 후신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두 번
읍루: 부여 동쪽으로 지금 러시아 땅에 읍루가 있었다. 임금이란 것이 없고 활쏘기를 잘하여 활, 살이 그 유명한 산물이다. (3)옥저: 읍루에서 남으로 내려와 함경도에 오면 옥저가 있다. (4)졸본: 장백산 골짜기 골짜기에는 조그마한 여러 나라가 있었다. 그중에서 유명하게 된 것이 졸본이다. 졸본은 본
읍루 인들이 돼지기름을 좋아하여 고기는 먹고, 가죽으로는 옷을 만들며, 기름은 온몸에 발라 피부를 유연하게 하고 추위를 막았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돼지기름은 동상을 예방하는 기능과 햇볕에 그을리는 것을 막아주고 동시에 피부를 희고 부드럽게 하는 성분이 있다하여 유럽 인들도 많이 사용하
읍루에서 기원
『구당서』 말갈 7부와 그 위치가 나옴
-흑룡강 중류에서 송화강 백두산에 이르 기까지 넓게 분포하고 있다.
-이러한 분포는 부여와 고구려의 영역과 겹치고 있다.
부여와 고구려를 괴롭혔던 숙신과 읍루의 후예인 말갈이 그 영역에 그대로 계승된다는 것은 모순을 가질수 밖에 ㅇ벗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