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읍성의 구조
읍성 안에는 고을의 기본적인 건물들이 있기 마련인데 관아와 객사, 관원과 백성들의 집, 시자오가 여인숙 등이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향교가 읍성안에 있기도 했다. 관원들이 정무를 보는 건물을 한데 묶어 ‘관아’ 또는 ‘공해’라고 하며 우리말로는 마을이라고도 했다. 고을
-”’성곽(城郭)의 나라’라고 할 만큼 많은 성곽이 만들어졌다”『세조실록』
성곽의 분류-산성(山城),행성(行城),읍성(邑城)
-산성:방어를 목적으로 하여 산 정상부의 고위 평탄면을 점유하며 쌓은 성
-행성:일정한 방어선을 유지하면서 여러 개의 성을 연달아 쌓고 성과 성 사이는 지형에 따라
읍성의 성벽이 있다.
이러한 성곽유적은 우리조상 들이 삼국시대 이래 끊임없이 이어진 외적의 침입에 맞서 이 강토를 지키려 했던 호국의지의 표상이라 할 수 있겠다. 문헌상에 나타난 것으로는 평양성의 존재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 처음인데 대체로 기원전 2세기에 해당된다.
한편 남한에서는
우리나라의 읍성읍성은 지방의 주요 지역에 관부(官府)와 민거(民居)를 둘러쌓은 성으로 지방 군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 행정 기능을 담당하던 성이다. 우리나라에는 한(漢)나라의 군현이 설치되었던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에 토성이 남아 있고, 이 시기의 현에도 작은 읍성들이 있었음이 발견되
Ⅰ. 고창 신재효 고택(高敞申在孝古宅) - 중요민속자료 제39호
1. 소재지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453
2. 신재효(1812∼1884)의 일생과 업적
본관 평산(平山)이며 호는 동리(桐里)·호장(戶長). 본명은 백원(百源)이다. 전북 고창 출생으로 아버지 광흡(光洽)은 경기도 고양 사람으로 한성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