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승군이 봉기하여 무력한 관군을 대신하여 적군을 격파했고 수군 또한 활약이 커서 전세를 만회할 수 있는 길이 트이기 시작했다.
그즈음 선조는 피란도중에 사신을 파견하여 명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명나라의 파병군은 1차로 ꡐ소서행장ꡑ군과 평양성에서 싸움을 벌였으나 실패하였고,
의승군의 활약은 불교의 위상을 재고하는 계기를 가져왔다. 전공을 세운 의승장이 고위관직에 임명되는 등 불교계는 국난의 위기에서 오히려 새로운 발전의 기틀을 찾게 되었다. 유교정치 체제하에서 천대받던 불교가 국난 극복에 큰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불교계는 정치 ․ 사회적 기반을 다시 갖
의승군들이 출현하여 나라를 구했던 사실 등 호국을 위한 불교계의 활동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다. 이러한 호국불교는 현실불국토의 이념에 입각하여 이 땅에 불국정토를 건설하고 또 그것을 수호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단순한 왕권의 비호나 권력에 의한 예종이 아니
)에 대한 사은(四恩)이 강조되고 있었다. 불교계는 충군적(忠君的) 입장을 견지함으로써 조선왕조의 불교배척에도 불구하고 왕실과 끊임없는 화해를 시도하고 있었다. 또한, 불교계는 임진왜란 이후 호국사상에 입각한 의승군(義僧軍)의 활약으로 왕조정부의 불교정책 변화를 기대하였다.
《 사찰 》
∴사찰의 어원 및 기원
사찰은 절 사원(寺院) 정사(精舍) 승원(僧院) 가람(伽藍) 등으로 불린다. 교단을 구성하는 비구(比丘:남승) 비구니(比丘尼:여승) 우바새(優婆塞:남자 신도) 우바이(優婆夷:여자 신도)의 사중(四衆)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것을 중국에서 승가람마(僧伽藍摩)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