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손)을 제외하고는 ‘속물’이라 부르며 상종하지 않았다. 극심한 생활고 속에서도 순수 예술과 문학에 심취하였다. 1924년 <금성>3호 백기만의 추천을 통해 ‘실바람 지나간 뒤, 새 한 마리, 불노리, 봄은 고양이로다’ 등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한다. 1929년 고향 대구에 내려와 칩거하다 공초 오상
이경손)을 제외하고는 ‘속물’이라 부르며 상종하지 않았다. 극심한 생활고 속에서도 순수 예술과 문학에 심취하였다. 1924년 그가 25세가 되던 해에 5월 문예동인지 [金星] 3호에 이장희라는 이름으로 시작 <실바람 지나간 뒤>, <새 한 마리>, <불노리>, <봄은 고양이로다> 등 5편을 처음으로 발표했다. 이
모여들어 장안에 화제를 모았었다. 바로 이 낙랑팔러를 기점으로 서울 곳곳에 다방이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당시 유명 인사들이 경영하던 다방을 들면 영화감독 이경손의 카카류(종로구 관훈동), 정치가 이기붕의 올림피아(광교), 문학가 이상의 제비, 쓰루, 69, 무기 다방 등을 꼽을 수 있다.
이경손이 <심청전>, <개척자>, 이필우가 만화를 영상화한 희극영화 <멍텅구리>를 발표하는 등 한국 무성영화의 전성기로 접어들게 된다 참고적으로 1924년 당시 유일한 조선인 극장주였던 단성사의 박승필은 한국 사람들만으로 영화를 만들겠다는 취지 아래 단성사 촬영부를 신설하고 <장화홍련전>을 제
이경손에 의해 이광수의 <개척자>가 영화화된 것을 시작으로, 60년대 <오발탄>,<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70년대 <무녀도>,<삼포가는 길>,<소나기>, 80년대 <사람의 아들>,<감자>, 90년대 <태백산맥>,<서편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소설 작품들이 영화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영화 <서편제>도 이러한 측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