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서양에서의 히어로 중심 ‘행동소설’과 유사하다면, 무정은 히어로라기보다는 캐릭터 중심의 ‘성격소설’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선악의 유형적 개념이 소멸되고 그 대신 구체적인 국가, 민족, 사회의 문제로 주제가 개별화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선악으로만 이
그리고 이 때 개인적으로 이혼의 아픔을 겪은 후, 1921년 귀국해 국내에 머물며 「허생전」, 「재생」, 「마의 태자」, 「단종애사」, 「이순신」, 「흙」, 「그 여자의 일생」 등의 소설과 「문사와 수양」, 「민족개조론」, 「민족적 경륜」 등의 논설을 써서 발표했다. 1939년에는 친일 문학인들의 모임
민족의식을 주창하였던 그의 이름은 그 빛나는 집필활동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뇌리 속에 ‘친일’이라는 두 글자와 깊게 연관되어 있으며 친일의 그림자는 그의 작품에도 큰 상처를 남겼다. 앞서 말했듯이 이광수에 대한 평가도 극단을 치닫는 경향이 다분한데 작품에 대한 평론을 하는 연구자들은 주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G. 루카치 <소설의 이론>, 1915
을 잃고 말았다. 총체성을 상실한 시대를 반영하는 ‘소설’이라는 문학적 형식을 빌린 <무정>은, 한국 문학사에 있어서 ‘근대’를 상징하는 최초의 작품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광수의 다른 작품에도 계속 드러나게 된다.
기본적인 사제 관계 축 박진사와 형식, 형식과 선형 그리고 삼랑진에서 형식과 세 여자의 사제 관계를 통해 교육 통해 민족 살리려는 안창호의 준비론 사상과 일치하고 있다. 한국 최초의 근대 소설인 이광수의 무정 1917년 매일 신보에 연재된 후 이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