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동국의 문호라고 추앙받은 이규보는 삶이 곧 문학이요, 문학이 곧 삶이었다.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을 살펴보면, 친구를 만나거나, 선물을 받거나, 좋은 경치를 보거나 항시 시로써 삶을 읊어 놓았다. 이에 東國李相國集에는 실로 많은 양의 시가 담겨 있다. 그러나 , 동국이상국집의 序
1168년 이윤수의 아들로 태어난 이규보는 9세 때부터 중국 고전을 두루 읽기 시작하였고 글재주가 남다르게 뛰어나 신동이라 불렸다. 그러나 천재라 불리던 그는 15세 때 과거에 실패하고 19세 때 다시 응시했으나 또 다시 낙방하고 만다. 이는 이규보가 워낙 술과 시를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
한국 한문학에서 이규보 만큼 그 영향력이 컸던 문인은 찾기 힘들 것이다. 그는 현존하는 몇 개의 고려시대 문집 중 <목은집>과 함께 가장 방대한 양의 것을 남기고 있을 뿐 아니라, 그의 영향력이나 중요성은 적어도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던 것이다. 문학관에 있어 이규보와
이규보는 “나는 옛 사람을 답습하지 않고 신의를 창출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세상 사람들은 두 사람이 들어간 문이 다르다고 오해하고 있지만 사실은 같은 문으로 들어가 다른 문으로 나왔다는 것이 최자의 생각이었다. 옛사람의 문장과 뜻을 읽고 배우는 것은 같지만 이인로는 옛사람의 문장
1. 이규보 (1168~1241)
이규보는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이자, 문인이었다. 왕정에서의 부패와 무능, 관리들의 방탕함과 관기의 문란, 민의 피폐, 그리고 남부지방에서 10여 년 동안 일어난 농민폭동 등은 이규보의 사회 및 국가의식을 크게 촉발시켰다. 이규보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나 13세기 한국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