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론
필자도 평상시 민담을 많이 읽는 편이다. 민담의 내용을 보면 허무맹랑한 애기도 있고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 안 되는 내용도 많이 있다. 현대 과학문명에서 과연 그런 것이 가능할 까? 의구심이 들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전우치전의 민담을 보면 도술을 부려 비와 바람을 마음대로 내리
일단 명나라는 임진왜란에 많은 군대를 파병하였으며, 곡식 역시 지원하였다. 그리고 군대유지를 위해 막대한 은을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자국에서 벌어지는 전쟁도 아니었기에 수송까지 해야 했으니, 명나라는 이 상황이 달가울리 없었다. 게다가 이여송이 벽제관에서 겨우 목숨만 구해온 이후,
5. 평양성의 탈환과 강화
1) 평양전투와 벽제관 전투, 행주전투
1592년 12월 25일 제독 이여송은 군사 3만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넜다. 그리하여 1593년 1월 5일 무렵에는 평양에서 가까운 평안남도 순안에 주둔하였다. 1월 6일, 약 8천의 조선군사와 함께 이여송의 군대는 평양성을 포위했다. 2천의 의승군
말하는 사람도 많지만, 일본 본국에서 조선 국왕을 잡아 오라는 독촉을 받고 있었기에, 결코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요동군이 패배하자 이여송이 이끄는 4만 8,000명의 대군이 들어왔고, 여기에는 포병이 속해있었다. 이여송은 평양을 공격하여 이를 함락하였는데, 일본군은 파주일대까지 퇴각하였다.
이여송(李如松)이 대군을 이끌고 개성(開城)을 향해 남진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이때 김천일이 지세(地勢)를 비롯하여 왜군을 탐지하여 명나라 이여송을 도왔다. 이러한 합동작전으로 왜군이 남으로 퇴각하자 그는 왜적을 추격하여 섬멸하라는 조정 명령을 받고 진주성에 주둔하였다. 사실 진주성 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