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개요
이용악의 현실적 상상력은 우리 시사에서 전형기로 일컬어지고 있는 30년대 후반 이후에 주로 활동하였던 시인들과도 호흡을 같이한다. 이용악 이외에도 이 시기의 주요한 시인으로 徐廷柱, 白石, 吳章煥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서정주, 백석, 오장환 등이 드러내는 현실성 또한 이용악의
Ⅰ 서론
월북 후 이용악이 북한문단에서 발표한 작품으로는 「평남관개시초」(1956.8), 「우리 당의 행군」(1964), 「땅의 노래」(1966), 「당중앙을 사수하라」(1967), 「붉은 총성을 천백배 불태워」,「오직 수령의 둥지에 뭉쳐」등이 있다. 아울러 김상훈과 함께 번역 출간한 『역대악부시가』(1963)등이
① 이용악의 성장 과정.
이용악은 1914년 11월 23일 함경북도 경성군(鏡城郡) 경성(鏡城面) 수성동(壽星洞) 45번지에서 아버지 이석준(李錫俊)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용악은 어린시절에 가난하고 궁핍한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상업에 종사하였는데 할아버지
이용악이용악의 시 작품들을 총체적 구조상황 속에서 조망하여 그 현실적 상상력의 실체를 파악하고자 할 때, 시인의 사상과는 구별되는 ‘언어구조’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한 전제가 된다. 왜냐하면 시인의 현실적 상상력은 일차적으로는 언어를 통해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어떠한 시도 구조적
· 선정 이유
해방 후 좌익 계열에 선 시인 중 이용악은 높은 시적 성취를 보인 것으로 평가받는데, 이는 좌익 계열 시의 일반적 특징과 관련하여 차이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문학가동맹’을 중심으로 활동한 시인들은 민족 주체의식을 강조하는 등 정치적 성향이 강한 시를 주로 썼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