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의 생애채만식(1902-1950)소설가. 극작가. 본관은 평강. 호는 규섭이며, 어머니는 조우섭이다. 6남 3녀중 다섯째 아들이다. 유년기에는 서당에서 한문을 수학하였고 임피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18년 상경하여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22년 졸업하였다. 그 해 일본에 건너가 와세다대학 부속
문학인들을 특징짓고 있는데, 이상·채만식·박태원·김유정과 같은 탁월한 문학자들에게는 치열한 투쟁으로 드러난다. 본고에서는 위의 네 작가를 통해 1930년대 소설에 대해 알아봄과 동시에 1930년대에 대두된 속죄양 의식과 한글 운동의 의미에 대해서도 다루고자 한다.
2. 개인과 민족의 발견
1)
삼아 그것을 향해 역사는 진보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해서 그 확신을 현실화할 수 있을까에 대해 채만식은 뚜렷한 것을 독자들에게 제시하지는 않는다.
2. 이상 혹은 자아의 파산
이상은 태도의 희극이라는 문학적 주제를 극한에 이르기까지 몰고 간 식민지 시대의 유일
11.13. 내면의식을 추구한 시
11.13.1. 시문학파가 개척한 길
‘시문학파’가 형성된 1930년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가 이른바 문화통치에서 군국주의적 무단통치로 강화되기 시작한 전환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국내에서는 문화운동만이 가능했는데 1930년을 전후하여 전개된 순수문학운동도 이
] [동아일보],[개벽]등에서 기자로 전전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레디메이드 인생), (치숙), (논이야기) 등의 단편과 (태평천하) (탁류),(소년은 자란다)등의 장편, (제향난),(당랑의 전설)등의 희곡이 있다. 1950년 6월 폐결핵으로 생애를 마칠때까지 당대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필봉을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