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은 붕괴되었다.
2) 4.19혁명 당시의 시대적 배경
(1) 정치적 배경
이승만 정권은 출범 초부터 국민들의 진정한 소리를 외면하고 강력한 권력 구축과 정권연장을 위한 작업을 진행해 나갔다. 이승만은 자심의 미약한 국회 내 기반을 다지기 위한 작업부터 시작했다. 국민의 정당과는 거리가
있다는 능창군 전(佺)을 교동에 안치한 후 살해했으며 대북정권에 호위된 광해군은 이어 대비폐출계획에까지 말려들어 광해군 10년(1618) 정월에 대비의 존호를 깎아 서궁이라 칭하게 한 대비유폐사건을 일으키고 말았다.
3. 서인이 내세운 인조반정의 명목
인조반정을 주도한 서인들이 광해군
정권을 잡은 당파가 실록의 편찬을 주도
선조대부터 실록의 내용이 공정하지 않다는 시비
실록이 정권을 잡고 있는 당파에는 유리하고 반대 붕당에는 불리하게 기록
반대당이 실권을 잡으면 이전의 실록이 편파적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자기 당파의 입장에서 실록을 다시 편찬
개정판 실
정권을 장악한 대북 과격파는 아예 반대 세력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정원군의 아들 능창군을 교동도에 가두었다가 나중에 살해하였다. 대북 과격파는 정세 불안 요인을 원천적으로 없애기 위하여 위와 같은 옥사를 벌였던 것으로 보인다.
2) 인목대비 페모 사건
계축옥사가 있고 난 뒤에도 아버지
따라 이승만이 단독 출마하게 되었고 당선은 이미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그러나 자유당은 지난번 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이기붕을 마저 당선시키기 위해서 4할 사전투표, 3인조 5인조 공개투표, 야단 참관인 매수, 자유당 후보의 득표율 80%확보 등 상상을 초월한 부정선거를 계획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