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日 양국간에 우호교린의 상징으로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총 20회(조선 전기 8회, 조선 후기 12회)가 이루어졌다.
조선 전기와 후기(임진왜란을 기점으로 하여)의 통신사 성격은 다르게 나타나는데, 여기에서는 조선후기에 파견된 통신사를 중점적으로 살핌으로써, 조선후기 조․일의 양국관계
일日일 各각自자說설箇개重중誓서 結결做주好호弟제兄형時시如여何하 好호意의思사 將장一일張장紙지來래 衆중朋붕友우們문的적名명字자 都도寫사着착請청去거
우리 여러 됴히 너기논 벋히 이 팔월 보름날 중추절에 돈거두워 샹완 노리져
우리 그 나래 각각 큰 세 닐어 됴 형뎨 지면 엇더고 됴
却說徐輝祖破了火耳灰者, 統軍前來, 平安、何福、陳暉等衆將接着, 言燕王聞禁軍一出, 膽已喪失。
각설하고 서휘조는 화이회를 격파하고 군사를 통솔하고 앞서 와서 평안과 하복, 진휘등의 여러 장수와 접하고 연왕이 금군이 한번 나감을 듣고서 담이 이미 상실했다고 말했다.
魏公曰:“不然, 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