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구목적 및 문제제기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는 미래도 없습니다.’ 독일과 일본의 전후처리 과정에서 ‘같은 역사, 다른 책임’에 관한 EBS 프로그램의 한 내용이다. 독일과 일본은 1940년 2차 세계대전의 주축국이었다. 유대인 600만 명을 무참히 학살한 독일과 위안부, 마루타 실험 등으로 200만
Ⅰ. 일본에 대한 역사교과서 왜곡수정 요구
1.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에 기초하고 있다
군사적 정복에 의한 지배기구로서의 ‘임나일본부설’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성격의 ‘임나일본부설’은 역사적 사실에 어긋남이 한일 역사학계에서 공통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
일본이 대두함으로써 자본주의세계의 내부구조는 크게 변동하였다. 최강의 자본주의국가가 된 미국이 고립주의로 전환한 것은 세계정치와 세계경제에서 최대의 발언권을 유보하려는 것과도 같은 것이었다. 소련은 전후처리 회의와, 미국·영국·프랑스·일본 등 자본주의 열강에 의한 간섭전쟁에서 배
전후의 전범재판이었던 뉘른베르크 재판(Judgment at Nuremberg)에서 나치의 전쟁범죄를 입증하는 가장 유력한 증거가 되었다.
테일러 교수는 이러한 전통적 시각을 모든 측면에서 반박한다. 우선, 히틀러의 팽창주의는 고유한 것이 아니라 전임자들-연합국측이 호의적이었던 슈트레제만(G. Stresemann)을 포함
3) 중․일 전쟁의 연장선상으로서의 태평양전쟁
태평양전쟁은 중국과의 전쟁이 연장된 것이었다. 미국은 중국과 영국에 대한 원조를 강화했고, 동남 아시아 식민지를 위협 당한 영국 네덜란드와 함께 일본을 포위하는 체제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1940년 7월 석유와 고철의 대일본수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