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임나일본부설이란, 왜가 4세기 중엽에 가야지역을 군사 정벌하여 임나일본부라는 통치가관을 설치하고 6세기 중엽까지 한반도 남부를 경영하였다는 학설을 말한다. 쓰에마쓰(末松保和)에 의해 집대성된 이 주장은, 이후 이노우에(井上秀雄)와 기토(鬼頭靑明), 야마오(山尾辛久) 등에 의해,
1400년의 침묵을 깨고 비석하나가 새롭게 발견됐다.
그것은 바로 광개토대왕비였다.
일본은 광개토대왕비문과 일본서기를 근거로 4세기부터 6세기까지 200년 간 고대 일본이 고대 한국의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했다.
한일 고대사를 둘러싼 논쟁의 시작이었다.
광대토대왕비 재발견
일본의 교과서왜곡과 중국의 역사왜곡은 일개 집단에서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서 주도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타국이 어떠한 반응을 보여도 무시하며, 고고학적인 성과나 문헌기록으로 거짓일 가능성이 높아져도 개의치 않는다.
2) 현재 상황과 우리 대응
(1) 일본 교과서 왜곡
일
일본에서는 백제를 "구다라"로 부르기 때문이다.
약 2000년 전에 일본으로 간 고대 한국인(야요이인)들이 일본에 벼농사법을 전수해주었다는 것이 일본인 학자에 의해 일본 각지의 초기 논의 구조 형태와 농기구들, 토기, 주거 형태와 부락 등을 통해 고고학적으로 규명되고 있다. 한반도 벼농사의 도래
Ⅲ 기마민족 정복왕조설
2차 대전 패전 후 일본의 국가사회가 전반적인 민주화과정을 밟아 국수적인 황국사관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는데, 『일본서기』의 불확실성을 비판하여 1949년 에가미 나미오에 의해 주창된 설이다. 고고학 자료를 통하여 고분시대 초기와 후기를 나누었는데, 후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