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아공영권’은 1940년 8월 일본 외상 마쓰오카 요스케에 의해 처음 발표되었다. 그는 서구 열강의 침략에 맞서 식민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아공영권을 조성하여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가 주창하는 대동아공영권은 일본과 중국, 만주로부터 시작하여 인도차
중국을 합한 '일만지(日滿支) 블록'으로 발전하였으며, 1938년 중일전쟁이 일어난 후에는 일본․만주국․중국이 주도하여 '동아 신질서'를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었다.
1940년 8월 1일 마쓰오카 요스케[松岡洋右] 일본 외상은 담화를 발표해 처음으로 대동아공영권을 주창했다. 그 요
대동아 신질서 건설'이라는 것을 내세우면서 처음 사용한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 개입한 직후인 1941년 12월 10일에는 이 전쟁을 대동아전쟁으로 부르기로 결정하였으며, 같은 달 12일에는 전쟁 목적이 '대동아 신질서 건설'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 이전에도 일본은 중국의 둥베이 지방, 즉 만주를 침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을 시작으로 1937년 본격화된 중일 전쟁 또한 중국의 종속화 식민지화를 노린 동시에 이곳을 공산주의에 대한 방벽으로 삼으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었다. 소련과는 1938년에 장고봉에서, 이듬해에는 또한 만주국과 몽골과의 국경지역인 노몬한에서 직접 전투를 벌였다. 이 두 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