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큰 오빠의 죽음과 형제들 중에 각별했던 오빠 녹문마저 떠나 그녀의 슬픔은 더욱 컸다. 『윤지당유고』속의 몇 개의 제문 중에 오빠 녹문에게 올리는 제문을 보면 그 마음의 상심이 깊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우여곡절 속에서도 윤지당은 만년에 독서와 저술에 힘쓰며 학문의 깊이를 더하였다.
“남자는 씩씩하고 여자는 유순한 것은 각기 그 법칙이 있는 것이다. 성인 태사와 성인 문왕의 업적이 서로 달랐던 것은 그 분수가 달랐기 때문이다…서로 처지가 바뀌었더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런즉 부인으로서 태임과 태사처럼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자포자기한 사람이다.”
자신의 호와 관
지배 지식에의 여성 참여는 이러한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본문에서는 남전여비와 삼종의도 그리고 무학과 유순의 의미,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여성 성리학자인 임윤지당(任允摯堂. 1721~1793)과 강정일당(姜靜一堂. 1772~1832)을 중심으로 조선시대의 여성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다.
임윤지당(任允贄當, 1721-1793)과 강정일당(姜靜一堂, 1772-1823)을 비롯하여 많은 이들이 돋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이 시대에 성행하게 된 국문 소설의 보급이나 여성들의 독서 열풍과도 일정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며, 영․정조대의 문예부흥적 시대 분위기와도 합치하는 것이다. 18세기 양반계층 여
1. 문정왕후(文定王后 중종의 세 번째 왕비 파평坡平 윤尹씨)
(1) 인물 선택 이유
조선을 대표하는 여걸은 누구일까?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기본적으로 차단된 만큼 우선 왕실 여성들이 떠오른다. 왕자의 난 때 주저하던 태종을 독려했던 원경왕후 민씨, 내훈을 지은 소혜왕후 한씨, 어린명종을 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