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다산 정약용(1762-1836)은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한국 최대의 실학자이자 개혁가이다. 실학자로서 그는 성리학을 비롯하여 의학, 과학, 산수 등 다방면에 통달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정약용은 생애를 통해 위기에 처한 조선 왕조의 현실을 개혁하고자 했으며, 그 현실 개혁의 이론적 근
1762(영조38)년 6월 16일 사시(巳時)에 경기도 광주군 초부면 마현리(京幾道 廣州郡 草阜面 馬峴里)즉 오늘의 양주군 와부면 능내리에서 정재원(丁載遠)의 네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명(兒名)은 귀농(歸農)이라 했다.
다산은 부친에게서 글을 배웠고 부친의 임지를 따라 다니면서 학문을 닦았다. 4세에 천
다산은 1762년(영조 38년) 6월 16일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당시 광주군 초부면 마현리)에서 4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진주목사를 지낸 정재원((丁載遠 : 1730~1792)이며, 어머니는 해남 윤씨로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 : 1587~1671)의 후손이며 조선시대 유명한 서화가인 공제 윤두서의 손녀
선생의 유고(遺稿)를 처음으로 보았다. 이 때 일세의 후학들이 이선생의 학문을 조술(祖述)하지 않은 자가 없었는데, 공도 이를 준칙으로 삼았다. 항상 자식이나 조카들에게 말하기를 ‘꿈 속 같은 내 생각이 성호를 따라 사숙(私淑)하는 가운데 깨달은 것이 많다.’고 하였다.” 『사암선생 연보』
자찬하는 것이 많다. 셋째는 이규보의 독특한 시론을 논리정연하게 서술한 것이다. 시 창작 과정에서 창신(創新)과 신의(信意)를 중시하는 입장에 서서, 시는 뜻을 주로 삼으며 뜻은 氣를 으뜸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요산당외기(堯山堂外記)에 실린 을지문덕의 여수장우중문시(與隋將于仲文詩)에 대